나는 오남매의 셋째 딸이다. 샌드위치처럼 두명 사이에 중간에 끼어있는 위치에 있다. 우리집 가정형편은 부유하지 않고 좀 가난한 편에 속했다. 그래서 학원한번 다니게 해달라고 감히 말 조차 꺼내 보지 못했다. 엄마는 김치찌개를 자주 끓여 주셨고, 콩나물 요리를 자주 먹었다. 김치지개를 끓일 때는 보통 돼지고기를 넣는데, 우리집은 언제나 참치였다. 참치도 일곱식구가 두어번 휘적 거리면 사라졌다. 만약에 엄마가 반찬 한가지를 만들어 올리면 그 음식은 그날에 사라졌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었을 때, 먹을 음식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엄마가 장을 보고 오시면 가끔씩 간식을 사오셨다. 이를테면, 설탕묻은 꽈배기나 핫도그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간식은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5분이면 자취를 감쳤다. 그자리에 없는 사람은 그냥 못먹는것이었다. 이렇게 다섯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나도 성인이 되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사는데, 초기에는 맞벌이를 해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경제관념이 매우 투철해서 예산을 잘 짜고 그에 맞게 잘 소비하는데, 좋게 말해서 경제관념이 투철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구두쇠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달 생활비를 딱 정해 놓고 그 에 맞게 쓰는것이다.
요리를 하면 나는 손이 큰편이고, 어릴 적 항상 음식이 모잘랐다는 느낌이 있어, 언제나 넉넉하게 만든다. 남편은 미국인인데 매끼마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녁식사를 만들면서 오늘 먹고 내일 점심에도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날 없어지는 것이다. 남편이 대식가이니까. 나또한 만만치 않게 많이 먹는 사람인데, 둘다 많이 먹다 보니, 그날 만든 음식이 냉장고에 남을 일이 없다.
냄비가 깨끗하게 비워질 때 마다, 엄마 아빠 얼굴이 떠 올랐다. 어린시절 생각해보면, 우리가족은 나 처럼 다 덩치가 상당히 큰편이며 음식도 매우 잘 먹고 좋아한다. 엄마가 요리를 하면 당일날 냄비가 비고, 밥통이 비고, 그 다섯명의 아이들이 그릇이 반짝 거릴 정도로 다 먹어치우는 것을 보면, 엄마아빠는 무슨생각을 했을 까? 부모님께 큰 두려움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엄마가 우리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토종닭 두마리를 잡아서 삼계탕을 끓여 주시는데, 지금도 아빠는 목뼈가 제일 좋다며 뼈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살점하나 남지 않게 국물하나 남지 않게 쪽쪽 뱉어 내신다. 남동생은 순진한건지 아빠는 목뼈를 좋아하시지 하시면서 나머지 목뼈도 찾아서 아빠 그릇에 옮겨준다. 농담삼아 '아빠는 남동생이랑 며느리 봐서 사시면 좋아하시는 목뼈 많이 드시겠네요' 하며 하하하 웃었지만, 씁쓸했다.
생선을 먹어도 머리를 드시고, 남은 뼈는 국을 끓여드시는 우리 아빠. 어쩌면 넉넉치 않은 형편에 이 거대한 오남매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 두려움에 쌀한톨 아까워 못남기게 하시고, 물은 항상 밥그릇에 받아 드셨다.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에서야 부모님의 심정이 조금에 나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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